▶ 전후의 밀라노 레지스탕스의 첨병으로 기억되던 밀라노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이탈리아 재건의 선봉에 서게 된다. 이로 인해 밀라노에는 많은 인구가 유입(※대부분이 이탈리아 남부에서 일자리를 찾아 유입된인구)되어 1951년 당시 130만 명이던 인구는 1967년에는 170만에 이르게 된다.
밀라노는 비교적 신속히 도시 재건을 이룩했으나, 60년대말에 이른바 ‘납의 시대1’가 찾아오면서 다시 혼란에 빠지게 된다.이후 80년대 초반까지는 급진 좌파와 급진 우파에 의한 정치적테러와 폭력이 계속되었던 시기로, 밀라노의 폰타나 광장(PiazzaFontana)과 경찰청(Questura di Milano)이 폭파된 바 있으며이탈리아 전국적으로는 약 2,000명의 사망자(1969~1981)가발생하였다.2
20세기 후반에 들어 밀라노는 크락시(Craxi) 총리를배출하면서 정치의 중심지로도 부각되기 시작하였고, 90년대최악의 정경유착 스캔들인 마니 풀리테(Mani Pulite) 사건이후 기업인이자 재벌이던 베를루스코니(Berlusconi)가 선거에출마하게 되면서 중도우파 정당 내 거물을 배출한 도시가 되었다.밀라노는 1993년 시장 직선이 실시된 이래 줄곧 우파 및 중도우파 정당의 거점 도시 역할을 하였으나, 2011년 좌파인 줄리아노피자피아(Giuliano Pisapia)가 당선되는 이변이 발생하기도하였다.
오늘날 밀라노는 이탈리아는 물론, EU에서도 손꼽히는 상업및 산업의 중심지로 이탈리아의 서비스업, 금융업, 패션업,출판업을 선도하고 있다. 이탈리아 최고의 명문 사립대인 보꼬니대학과 폴리테크니코 대학이 자리한 교육 명문도시로도 알려져있다. 또 유럽 최대 규모의 전시회장(FieraMilano)을 보유하고있는 전시 산업의 메카이기도 하다.
밀라노 최초의 여성시장인 모랏띠(Moratti, 2006-2011,중도우파인 PdL 소속)의 주도로 밀라노는 2015 세계박람회개최지로 선정된 바 있다. 세계 박람회 준비를 위해 지하철증설(4,5호선)을 비롯한 사회기반시설 확충에 매진하였으나,이탈리아의 고질적인 문제인 관료제와 더딘 행정체계로 인해사회기반시설 정비는 커녕 박람회 개최 당일 박람회장이 미완공된채 개장하여 문제로 지적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밀라노 엑스포는목표 방문객 수인 2천만 명을 달성하면서 성공적으로 종료되어세계적 도시로서 밀라노의 위상을 보여주었다.

밀라노의 포르타 누오바(Porta Nuova) 지구
이 외에도 2000년대 초반부터 밀라노는 대규모 공사를 진행해왔는데, 원래 시내 중심가에 있었던 박람회장의 이전(※밀라노 외곽 도시인 로(Rho)에 이전)을 비롯해 EU 최대 규모의 대공사가완료 중인 Porta Nuova 지구 등 새로운 비즈니스 지구를 구축하는작업이 진행 중이다. 특히 밀라노의 혁신 비즈니스 지구라 할수 있는 Porta Nuova 지구 에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Unicredit 본사로 231m 높이, 참고로 63빌딩은 249m)이 들어서있으며, 2015년 4월에는 해당 지구 내로 삼성전자 이탈리아법인이 이전하면서 혁신의 이미지를 강화하기도 하였다.
1 이탈리아어로는 ‘안니 디 피옴보 anni di piombo’라고 하는데 ‘피옴보 piombo’는 납이라는 뜻으로 총탄을 뜻한다.
2사실, 이탈리아에서는 아직도 무정부주의자들이 주도하는 폭발물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밀라노에는 주로 대기업이나 미국 총영사관 등 해외공관을 상대로 폭발물 소포가 배달되어 대피하는 소동이 가끔 발생하나 대부분 미수에 그치고 있다. 2010년 로마 주재 칠레 대사관과 스위스 대사관에서는폭발물 소포로 인해 해당 공관 내 직원이 크게 상해를 입은 바도 있다.
+본 기사는 주 밀라노 대한민국 총영사관에서 제공한 자료로 총 9편에 걸쳐 밀라노의 역사, 문화, 생활정보등을 간단하고 알기 쉽게 정리한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