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오 베를루스코니 前총리 (Silvio Berlusconi)
4선 총리(※3번은 선거를 통해, 1번은 전 내각의 실각으로 임명)라는 사실보다 각종 추문과 말실수로 국제적 유명세를 탄 베를루스코니(1936년생, 78세) 前총리는 이탈리아에서는 “기사(il Cavaliere)”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1977년 노동훈장과 함께 기사 작위를 받았기 때문인데 2013년 8월 탈세 및 배임 혐의로 4년징역형을 선고 받은 후, ‘쫓겨나기전에 내 발로 나가겠다’는 심정으로스스로 기사 작위를 포기했다.
현재까지 무려 20건의 민•형사소송에 휘말렸으나 2013년에 횡령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기 전까지는모두 무혐의 또는 증거 불충분등으로 단 한 번도 처벌받은 적이 없다. 하지만 단 한 건의 실형선고로 인해 2013년 11월에는 상원의원에서 제명되었고 6년간 공직 복무가 금지되는 등의 굴욕을 맛보았다.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나폴리타노 대통령이 사면을 거부했고, 이탈리아교도소의 수용 능력 부족과 고령자임을 이유로 사회봉사로 대체복역이 결정되었고 2015년 3월 사회봉사 활동이 종료되었다.상원의원 매수혐의에 대해서는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는 사실 상 정계 복귀가 어려운 지금도 다양한 가십으로여전히 언론에 거론되고 있다. 48세 연하의 여자친구와의 결혼설,이혼한 전부인에게 지급하는 막대한 위자료(미성년자 성매수 혐의가 불거지자 이혼. 위자료 액수는 여러 번 조정을 거쳐 월200만 유로(22억 원 상당)로 최종 확정되었다.외에도 축구 시즌(※AC 밀란의 구단주), 선거 시즌이면 끊임없이 언론에 노출되고있다.
포브스(Forbes)紙에 따르면, 2013년 기준 Berlusconi의자산은 $62억(€45.6억 유로)로 이탈리아에서 7번째로 부유한인물로 집계(※2007년까지는 부동의 이탈리아 제일의 갑부)되었다.
원래에도 유복한 가정 출신이나 건축 및 부동산 사업으로 부를축적하기 시작하였으며, 70년대에 밀라노의 베드타운인 밀라노두에(Milano Due)를 건설하면서 거부 반열에 들어선 것으로알려졌다. 현재 베를루스코니 자신과 다섯 명의 자녀가 소유한자산은 모두 60억 유로(※8조 5천 억 원)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베를루스코니의 정계 진출은 계획이라기 보다는 우연한 기회에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1992년 이탈리아 정계에 만연했던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마니 풀리떼(※Mani Pulite, ‘깨끗한 손’이라는 뜻)”라는 이름의 대대적인 검찰 조사가 실시되었다. 정경유착 비리를 수사하던 검찰은 베를루스코니가 경영하던 회사까지조사를 하게 된다.25개월 간 지속된 이 조사에서 1,000명 이상의 정치가와 상•하원의원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고 43명의 정치가가 구속되면서당시 제1당이었던 기독민주당(DC, emocrazia Cristiana)을비롯한 5개 정당이 해산되어 제1공화국이 파국을 맞았다.
27명의 기업인은 뇌물 공여 혐의로 구속되고 사건에 연루된 10명은 자살,담당 검사 2명이 살해당했으며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폭탄테러가 일어나는 등 사건이 불러온 파장은 이탈리아 정계뿐만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왔다.
1993년 베를루스코니는 1994년 ‘전진 이탈리아당’을 창당해정계 진출을 선언하는데 표면적 이유는 마니풀리떼 사건 이후여러 정당의 해산으로 인한 정치적 고아들을 대변하기 위함이라고설명하였으나, 실질적 이유는 마니풀리떼 사건으로 여러 유착관계에 대한 조사를 받다 보니 정치적으로 보호를 받기 위한 정치권력 확보의 필요성을 느껴서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렇게서둘러서 설립된 정당은, 한국어로는 편의상 ‘전진 이탈리아당’이라 번역하고 있으나, 정당의 본래 명칭은 포르차 이탈리아(Forza Italia)라고 하는데, 이는 축구 국가대항전에서 이탈리아국가대표를 응원하는 구호이기에 이탈리아인에게는 매우친숙한 문구이다. 친숙함을 무기로 선거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베를루스코니식 포퓰리즘(populismo berlusconiano)’이라는단어가 새로 생겨났다. 이탈리아에서는 베를루스코니는 곧포퓰리즘이라는 인식이 있으며, 파시즘 이후 이탈리아식 부정적포퓰리즘을 재정립하였다는 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선거 때마다주택에 대한 면세, 노령 연금 상향 조정, 육아 연금 제공 등유권자를 현혹하는 공약으로 선거 캠페인을 꾸렸다꾸렸다는 비판을받아왔다.
베를루스코니는 1994년, 2001년, 2005년, 2008년 4회에걸쳐 총리를 역임하였으나, 2번 째 임기를 제외하면 모두 임기를채우지 못하고 불명예 퇴진을 한 바 있다. 마지막 4번 째 임기의경우 이탈리아 경제 위기의 책임을 지고 퇴진하였으나 2016년 밀라노 시장 후보 경선에 여전히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 기사는 주 밀라노 대한민국 총영사관에서 제공한 자료로 총 9편에 걸쳐 밀라노의 역사, 문화, 생활정보등을 간단하고 알기 쉽게 정리한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