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쥬셉페 베르디 국립음악원 (Conservatorio di Musica “Giuseppe Verdi” di Milano)
1773년 당시 밀라노를 통치하던 합스부르크 군주국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a) 여왕의 국립 학교 설립 구상 중에 귀족들을 위한 음악 학교가 포함되어 현재 국립음악원의 시초가 되었다. 1750년대 이후 이탈리아 극장 문화에 모차르트, 글룩 등의 해외 작곡가들이 미치는 영향이 심화되자 이탈리아 스타일의 음악교육과 작곡가, 전문 연주자 양성에 대한 필요성이 제시되었고이에 따라 국립음악원 설립이 자연스럽게 추진되기 시작했다.
수년간의 개조와 수정을 거쳐 1808년 현존하는 형태의 밀라노국립음악원이 설립되었고 음악원 내 도서관은 다수의 이탈리아고음악 서적 및 악보를 보유하여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도서관중에 하나로 남아있다.
당시 파리에서 자리 잡고 있던 고급 교육자 과정 “Conservatoire”의 명칭을 빌어 Conservatorio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데이러한 명칭은 현재까지도 음악학교 혹은 음악원으로 동일시되어 쓰여지고 있다.
200여년에 걸친 역사 속에 작곡가 지아코모 푸치니(GicomoPuccini), 아리고 보이토(Arrigo Boito), 지휘자 클라우디오압바도(Claudio Abbado), 리까르도 무티(Riccardo Mutti),성악가 바르바라 프릿톨리(Barbara Frittoli) 등 수많은 대가들을배출했으며 현재까지도 많은 해외 유학생을 유치하며 음악, 특히성악도들에게 세계 최고의 명문학교로 발돋움하게 되었다.현재 재학중인 한국인 유학생은 대략 평균 100여 명 정도로추정된다.
스칼라 극장(Teatro alla Scala)
스칼라 극장은 밀라노가 합스부르그 군주국의 통치를 받던시절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 개인 소유의 왕정 극장이었다.1776년 화재로 큰 피해를 입고 당시 최고의 건축가 쥬세페피에르마리니에 의해 첨단의 시설을 갖추며 재건축되었고 1778년 8월 3일 “Nuovo Regio Ducal Teatro alla Scala”라는 이름으로그 화려한 역사의 막을 열었다.
당시 스칼라 극장은 단순히 공연장의 용도 이외에도 무도회장,리셉션장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되었으며 이탈리아에서 엄격하게금지되어 있던 도박이 유일하게 극장내에 허용되어 밀라노 고급<그림22> 스칼라 극장 전경사교계의 가장 중요한 장소였다. 도박으로 인한 수익금 역시 극장경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곤 했다.
1920년대에 들어서며 귀족과 부유한 상인계층 이외에도 군인,젊은이, 부르주아 계급, 장인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출입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오페라 극장 문화 유행이 정점을이루었으며 스칼라는 이러한 배경의 중심이 되었다.
극장의 경영권은 지속적으로 밀라노 귀족들의 손에 맡겨졌으며청중들의 계속적인 관심을 끌기 위해 시즌 프로그램 구성에 많은고민과 투자가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노력은 신인 작곡가 발굴과역사에 기록될만한 명작들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1996년 현재의 형태인 재단법인으로 정비되면서 밀라노 시청의소유가 되었으며 재단이사장의 자리는 자연적으로 밀라노 시장이겸임하게 되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건축가 마리오보타(Mario Botta)에 의한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이루어졌으며,당시 예술감독이었던 리까르도 무티(Riccardo Mutti)는 재개관기념 공연으로 1778년 개관 당시 공연 작품이었던 살리에리의L’Europa Riconosciuta 를 선택했다.매년 12월 7일, 밀라노 수호성인인 암브로지오 성인의 날에 시즌 프리미어가 개최되며 공연의 내용 뿐만 아니라 레드카펫,리셉션 장소, 담당 요리사 등의 선정에 있어 수많은 화제거리를만들어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현재 전세계 오페라 극장 중 티켓 값이 가장 비싼 극장으로도유명하다.